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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티쿠스 - 윤리적 인간의 탄생, 김상봉, 한길사, 1999 Dog'ear

모든 이상주의는 현실을 넘어선 곳에서 존재의 진리를 추구합니다. 이처럼 이상주의자가 주어진 현실을 끊임없이 뛰어넘으려고 하는 까닭은 그가 현실에 대해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이상적 완전성에 대한 열망과 동경은 오직 현실의 불완전성에 대한 깊은 절망이 드리우는 그림자입니다. 이상주의자가 추구하는 이상이 크고 높은 것은 그가 현실에서 체험하는 절망과 좌절이 그만큼 크고 깊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참으로 빛을 동경하게 되는 것은 언제나 우리가 어둠 속에 있을 때입니다. 존재의 어둠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잃어버린 사람도 빛에 대해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때 빛을 향한 열광은 정신의 허영이나 공허한 자기도취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직 실존의 고통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만이 정신의 동경의 참됨을 증명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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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대한 절망은 종종 우리를 퇴폐로 이끕니다. 어차피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라면 사람들은 애써 정의와 선을 추구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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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똑같이 현실에 대하여 비관적 태도를 취한다 하더라도 이상주의자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점에서 현실주의자와 다릅니다. 첫째로 이상주의자는 현실에 대하여 절망하되, 결코 불의한 현실을 정당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승인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현실에 대해 절망한다는 것은 여기서 현실을 부정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로 이상주의자는 불의가 현실을 지배한다는 것을 사실로써 인정한다 하더라도 불의가 현실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존재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불의가 지배하는 현실은 어디까지나 왜곡된 현실이지 참된 현실이 아닙니다. 이리하여 이상주의자에게 현실은 평면이 아니라 깊이입니다. 그리고 눈앞에 드러난 불의한 현실 너머에 있는 참된 현실을 향한 초월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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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평면이 아니라 깊이이고 하나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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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의 첫번째 대화는 현실주의가 어디서 좌초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실례입니다. 사실 현실을 반박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 그 자체입니다. 이완용도 현실이지만 안중근도 현실입니다. 박정희도 현실이지만 장준하나 함석헌도 그와 똑같은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두 종류의 현실은 대립합니다. 그리고 현실 그 자체는 자기 속에서 발생하는 대립적 계기들을 화해시킨다거나 아니면 둘 가운데 한쪽 편을 들어줌으로써 대립을 종식시킬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의 모든 계기들은 서로에게 대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생각해보면, 우리가 현실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언제나 이념에 의해 매개된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역사 속에서 이념과 이념이 충돌할 때,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이론적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태도의 문제입니다.

김상봉, <호모 에티쿠스 - 윤리적 인간의 탄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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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매번 좌절하고 종종 기뻐하면서 간신히 살아가지만,그래도 한국에서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 혹은 현실적으로 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의 한국에 살면서 절망하지 않을 도리는 없지 않나 싶고. 어쩌면 한국은 이상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곳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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